10년 동안 공사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40.5마일로 잇게 된 파나마운하가 1914년 8월 15일에 개통됐다. 그동안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는 남아메리카의 끝을 도는 8천 마일의 위험한 항해였으나 파나마의 가장 좁은 부분을 통과하면 훨씬 더 빨랐다.
미국은 이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1915년 2월 20일부터 11개월간 샌프란시스코에서 파나마태평양 박람회를 개최했다.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극렬함에도 동서양각국의 출품이 아주 많았다. 높은 누각들을 지어놓고 정원의 꽃들도 휘황찬란하고 밤에는 불야성을 이루어 많은 관람객이 다녀갔다.
12월 20일에 막을 내린 박람회 총 경비는 2천 586만 5940달러, 수입은 2천 718만 8065달러였다. 신한민보는 이 박람회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뤄 한인사회에 알렸다.
◈ 1914. 3. 26: ‘우리도 박람회에 뜻이 있는가?’
하상옥 논설/미국은 1915년에 상항에서 파나마 태평양 박람회를 열어 태평양 연안에 상업 중심을 삼으며 동양무역의 교통을 발달하게 하여 패권을 장악하려는 계획이다. 상업은 그 나라를 부강케 하는 원동력이다. 이 같은 주요한 일에 박람회 기간은 점점 준비를 재촉하는데 우리의 자본가들은 상항 박람회에 대하여 뜻이 있는가?
◈ 1915. 4. 8: 태평양 연안의 항구는 파나마운하 개통이후 상업이 발달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출구한 물건이 1천 355만 9천 572원 이었다. 미국 대서양 함대는 샌프란시스코 박람회에 참가할 것이고 7월 4일에 금문만에 날을 것이다. 시카고에서 온 비행기가 날마다 비행하여 관광자를 기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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