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출생하여 구한말 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신자가 되었다. 서울에서 선교사 통역관으로 활동하다 하와이 이민들이 목사 파송을 요청하자 목회를 하려고 도미하였다. 하와이에서 신민회와 ‘애바친목회’를 결성하고 1905년 이승만과 루즈벨트 대통령을 찾아가 독립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1906년 ‘시사신보’를 창간했으며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했다. 1909년 샌프란시스코 상항한인감리교회에 전도사로 취임하여 2년간 시무했다. 1919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지방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미국인 사회에 한인의 입장을 선전하는 사무를 담임하였다. 파리평화회의 대표로 피선되어 미국언론 관계 인사들을 만나 한국의 독립을 설명하고 호응을 얻었다. 미국정부에게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도록 하는 청원서 작성위원 3인 위원으로 서재필에 의해 임명되었다.
1920년 대한인국민회 회장으로 피선되어 당시 4천여 명의 회원을 이끌었으며 임시정부에 2-3천 달러의 독립자금을 지원하였다. 1929년 뉴욕에서, 1939년에는 리들리 한인장로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유엔평화회의에 비공식적인 한국대표로 참석했다. 1949년 2월 이승만대통령의 초청으로 귀국해 외무부와 공보부 고문으로 취임하였고 연희전문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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