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영(1892-1982):독립금을 걷기 위해 발로 살았다

1913년 20세의 나이로 유학차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로스앤젤레스, 다뉴바,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60년을 오로지 대한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3.1운동이후 다뉴바에서 국민회 지방회장을 지내며 200여 한인들을 모아 대회를 열고 바로 그 자리에서 독립금을 거두었다. 혼자 서 한인이 사는 곳이면 찾아가서 독립금을 거두어서 이승만에게 보냈다. 포도장사 하던 것도 소홀히 하고 일 년 내내 한인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다녔다.

싼타바바라, 임페리얼벨리, 로드아일랜드, 맨티카, 스탁톤 등으로 다녔다. 다뉴바에 사는 최학선이라는 사람은 400달러를 내고 다음에 벌어서 또 400달러를 내겠다고 약속을 하는 등 당시 한인들은 독립자금 내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노름을 하던 사람도 돈 통을 따로 두고 돈을 모았다가 이범영이 가면 내 주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자금이 걷히는 대로 워싱톤에 상해임시정부와 연락하고 구미 외교선교위원회를 설치해 이승만에게 보냈다. 이승만의 최 측근으로 1954년 10월 진해에서 열린 아세아반공연맹 창설을 도왔다. 부인 이 메리가 당시 서울에 있던 남편에게 미국에서 뷰익차를 보냈는데 이범영은 그 차를 타고 다녀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