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서 출생하여 1897년 미국에 유학을 와 로녹대학(Roanoke University)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1904년 프린스턴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1905년 귀국하여 ‘경성청년회’총무를 맡았고 경신학교 교감과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겸임했다. 1913년 중국으로 가서 해외민족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월 상해 임시정부 한국대표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평화회의에 가서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 진정서를 제출하려 했으나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임시정부 수립 후 의무총장과 학무총장으로, 9월에는 구미위원부 위원장으로 봉사했다.
그 뒤 미국에 다시 와서 공부해 1923년 로녹 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24년 중국 상해와 사천에서 교수를 하고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이 되었다. 1945년 귀국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입법위원장으로 피선됐다. 1952년 공산당에 납치되었다가 신병으로 별세하였다.
1989년 정부에서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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