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29세의 나이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왔다. 천성적으로 노동이 맞지 않아 고생하자 이를 본 친구 강영소가 하와이 애와농장에 조그만 점포를 하나 내주었다. 농기구와 음식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러나 외상값을 회수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1908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와서는 미국인 가게에 점원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고향 경주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동생 둘을 불러 들였다. 초기 이민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1913년 12월5일 38세 때 29세의 김혜원을 하와이에서 데리고 와서 이대위목사의 주례로 샌프란시스코에서 결혼했다. 농장일과 점원 일을 하며 흥사단 사업에 깊이 참여했다. 롬폭 농장에서 일을 하다 비로 인해 농토가 다 떠내려가자 포도밭이 많은 다뉴바로 이사했다. 부인과 함께 포도 따는 일을 하였다.
3.1운동 후 1919년 8월5일 다뉴바에서 대한여자애국단이 조직되었다. 당시 34세였던 부인 김혜원이 초대 총 부단장으로 여성운동에 앞장서자 이 일에 적극 협조해주었다.
김성권은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 오기 전까지 한학을 공부한 전형적 선비요 문필가였다. 그는 미국에 와서 흥사단에 들어 도산 정신을 구체화해 나가며 글로 한인사회에 희망을 주었다.

정부에서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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