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는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한국에서 은퇴한 지 벌써 네 해, 그리고 이곳에서 딸과 함께 지낸 지도 어느덧 두 해를 넘겼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미국 생활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일상이 되었다. 오늘은 따스한 햇볕에 이끌려 아내와 함께 동네 산책길로 나섰다.

샌프란시스코 근교에는 걷기 좋은 오솔길이 많다. 이곳에서는 그런 길을 ‘트레일’이라 부르는데, 산등성이를 넘는 작은 길에도 나무 팻말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들이 적혀 있다. 한국에서도 요즘 산책길이 잘 정비되어 있지만, 이곳의 길은 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나무 향기, 흙냄새, 그리고 이름 모를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어쩐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길 위에는 몇몇 나이 지긋한 이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7~8km쯤 뛰어보기로 했다. 아내를 뒤로하고 발을 내디딘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길섶 낮은 풀 속에서 나는 아주 가벼운 소리였다.

딱, 딱.

“무슨 벌레 소리일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달릴수록 그 소리는 규칙적이었다. 벌레가 내는 소리라기보다는, 마치 땅속 어딘가에서 울려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다 문득, ‘혹시 얼었던 땅이 녹으며 나는 소리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어쩌면, 이 소리가 샌프란시스코에 봄이 오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이곳의 자연은 서울과 다르다. 공기는 맑고 하늘은 넓지만, 이상하게도 별빛이 흐리다. 보름달이 떠 있어도 달빛이 환하게 깃든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반면, 햇볕은 강렬하다. 마치 서치라이트가 눈앞에서 비추는 것처럼 눈이 부시다.

같은 보름달이라도, 중국 대련에서 본 달은 언덕만 넘으면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서울의 달은 그보다 조금 더 따스했고, 지금 이곳에서 바라보는 달은 어딘가 기억 속보다 흐릿하다. 고향에서 바라보던 달과는 분명 다르다. 낯선 곳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익숙한 것들마저 낯설게 만든다.

그렇게 걷다 보니, 생각은 자연스럽게 한국을 떠나오던 그때로 흘렀다.

지난 두 해 동안 한국과 미국을 세 번씩 오갔으니, 이제는 ‘그립다’거나 ‘간절하다’는 감정에서 한 발짝쯤 멀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때때로 이유 없는 먹먹함이 찾아온다.

전철을 타고 노량진 같은 오래된 기찻길 옆을 지나거나, 분당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탈 때, 나는 창 밖을 바라보며 이상하게 저릿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고향’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지난 세월이 그리워지는 순간.

사실 나에게는 정작 ‘고향’이라 부를 만한 곳도, ‘친구’라 부를 얼굴도 많지 않다. 서울은 내가 성장하는 동안 끊임없이 변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교동 기찻길 옆 오르막길, 지금은 홍대 앞의 명소가 되어버린 그곳이 내 집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서울은 언제나 그런 곳이었다. 새롭게 만들어지고, 다시 허물어지는 도시. 오히려 지금부터 역사를 묵혀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을 떠나며 알 수 없는 감정들을 소화해야 했다. 익숙한 곳을 떠나는 아쉬움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그렇게 한국을 떠나,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작은 도시에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남들이 은퇴 후 유럽 여행을 떠날 때, 나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어쩌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이 삶 자체가 내게는 가장 큰 변화이자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흔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어디에 살든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나는 언제나 지구별을 여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 때도 나는 여행객이었고, 이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집이나 고향 같은 것은 원래부터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여행지를 택한 사람이 그곳의 불편함을 탓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남극을 방문한 여행자가 그곳의 혹한을 불평하지 않듯,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겨야 한다.

지금 나는 이탈리아 로마의 거리를 걷는 대신,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오린다의 산책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올해 말이나 내년쯤 다시 서울의 거리를 걷게 되겠지.

그날도, 오늘처럼 새로운 여행의 설렘이 가득할 것이다.

그러다 문득, ‘봄의 소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딱, 딱.

내 후드 끝에 달린 끈의 플라스틱 팁이 달릴 때마다 서로 부딪히며 나는 소리였다. 우연히 길이가 같아서, 내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다 가끔 마주쳐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봄은 그렇게, 아주 사소한 것에서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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