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에 딜라노에 한시대와 그의 가족은 The Hanka Enterprise Company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하와이로 이민을 온 한시대는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작농을 하려고 본토로 왔다. 땅을 세를 얻어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하여 일차 세계대전동안 쌀값이 오르자 그는 돈을 많이 모을 수 있었고 농장지를 살 수 있었다. 약 4백 에이커가 되던 그의 농토는 1945년 말에는 50만 달러 가치가 되었다. 또한 그의 회사는 캘리포니아 잉글우드라는 곳에서 아파트공사를 하였다. 학생을 포함한 많은 한인들이 그곳에서 일하였다. 한시대는 흥사단과 대한인국민회에서 리더로 일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그는 모든 사업을 정리하여 고국으로 돌아갔다.

한시대 |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한시대는 대한인국민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그리고 흥사단의 중심인물이었다. 중가주 딜라노에서 포도농사를 지어서 크게 성공했고, 독립운동에도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는 사업과 국권회복 운동에서도 항상 대담성을 보였다. 한시대는 1903년 부모와 함께 15살의 나이에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왔다. 호놀룰루 한인중앙학원을 졸업했다. 1913년에는 온 가족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후 멘티카지역에서 사탕무우를 재배했고, 다시 딜라노로 이주해서 포도농사를 지었다. 과일도매상, 정원 묘목 재배 등 다양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흥사단에는 1917년 가입했다. 단우번호는 179번. 1930년대부터 대한인국민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부인 박영숙과는 하와이에서 결혼했다. 5남2녀를 두었다. 한시대는 1981년 93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현재 로즈데일 묘지에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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