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주민: 1800년대 이전까지 오로니 사람들이 거주.
- 스페인 식민지 시대 (1776): 스페인의 바우티스타 데 안사를 선두로 들어와 군사 기지와 선교 기지를 세우고 처음에는 예르바 부에나(Yerba Buena)라고 이름 붙임.
- 멕시코 통치 시대 (1821): 멕시코가 독립함에 따라 샌프란시스코는 멕시코領이 됨.
- 멕시코-미국 전쟁 (1846): 멕시코-미국 전쟁 발발.
- 샌프란시스코 명칭 (1847): 공식적으로 샌프란시스코라는 이름으로 다시 변경.
- 미국 영토 편입 (1848): 멕시코-미국 전쟁 종결 후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한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영토가 됨.
- 골드 러시 (1849):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로 인구 급증.
- 대지진 (1906): 대지진과 화재로 샌프란시스코가 심각한 피해를 입음.
- 랜드마크 건설 (1930s): 골든 게이트 브리지 등 중요한 랜드마크들이 건설됨.
- 사회 운동 (1960s-1970s): 반(反)문화 운동과 게이 권리 향상의 중심지가 됨.
- 기술 혁신 (1980s-1990s): 기술 부문과 도시 개발의 급격한 성장.
- 21세기: 샌프란시스코는 계속해서 기술 혁신과 산업 발전의 최전선에 머물고 있음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은 수천 년 동안 인디언 부족들이 거주해왔습니다. 16세기에 유럽인들이 캘리포니아 해안을 항해하였으나, 자주 발생하는 안개 때문에 지금의 골든 게이트 다리가 있는 지역을 지나치기 일쑤였습니다. 이 지역을 처음 목격한 유럽인은 1769년 포르톨라 탐사대였습니다.
이후 1776년, 스페인 탐험가 후안 바우티스타 데 안차는 성 프란치스코 디 아시시를 기리기 위해 선교소를 세웠으며, 이 선교소는 지금의 미션 돌로레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1792년, 탐험가 조지 밴쿠버가 스페인 선교소 근처에 여바 부에나라고 명명된 작은 기지를 설립했습니다. 이 지역에는 많은 영국인, 러시아인 및 기타 유럽 이주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1821년, 멕시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이 지역을 통제하게 되었습니다. 1846년, 존 드레이크 슬로트 제독의 지시로 캘리포니아는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미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847년에는 여바 부에나의 이름을 샌프란시스코로 변경하였습니다.
1848년 1월 24일, 캘리포니아 구릉지대의 서터 요새에서 금이 발견되었고, 금광 열풍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샌프란시스코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중요한 항구와 보급지가 되었습니다. “포티나이너스”로 불린 금광 채굴자들이 도착하면서 인구가 1,000명에서 25,000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 시기 동안 도시는 법이 사라진 상태였고, 바바리 코스트 지구는 매춘과 도박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1906년 4월 18일,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여 도시가 거의 파괴되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빠르게 재건되어 1915년 파나마-태평양 국제박람회를 개최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1930년대에는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다리와 골든 게이트 브리지가 완공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샌프란시스코는 태평양 전장으로 가는 주요 출발점이었으며, 전후에는 유엔 창설 회의가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도시는 문화적 보헤미안 중심지로서의 명성을 이어가면서, 1950년대 비트 시인들과 1960년대 히피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89년에는 또 다른 큰 지진이 발생했으며, 1990년대에는 인터넷 기술 중심의 경제 붐이 시작되어 인구가 다시 증가했습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밸리와 인접해 기술, 금융,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여러 사회 문제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매력적인 도시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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