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의 꿈과 서부의 황금
1830년대, 아메리카 대륙의 동부와 서부는 마치 꿈과 현실처럼 멀게 느껴졌다. 동부 사람들은 서부의 황금과 새로운 삶을 꿈꾸었고, 서부 사람들은 동부의 제품과 시장을 갈망했다. 그러나 험난한 산맥과 광활한 평원은 두 세계를 가르는 큰 벽이었다.
1853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가 미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향했지만, 그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마차나 배로 험난한 길을 넘으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부의 정치인들은 서부와 연결하는 철도 건설의 꿈을 꾸기 시작했으나, 기술적 어려움과 자금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1861년, 젊은 토목기사 테오도르 유다는 대륙횡단철도 건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섰다. 그는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탐사하며 열차가 지나갈 수 있는 경로를 연구했다. 그의 설계도를 가지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만나 대륙횡단철도 건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었지만, 링컨 대통령은 국가 통합과 경제 발전을 위해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추진했다. 1862년, 태평양 철도법이 통과되어 유니언 퍼시픽 철도(동부)와 센트럴 퍼시픽 철도(서부)의 건설에 정부 지원이 확정되었다.
두 회사는 각각 오마하와 새크라멘토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험난한 지형, 악천후, 노동자 부족 등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진행되었다. 동부에서는 유니언 퍼시픽 철도가 평원을 가로질렀고, 서부에서는 센트럴 퍼시픽 철도가 험준한 산맥을 뚫고 선로를 놓았다.
1869년 5월 10일, 유타주 프로몬토리 서밋에서 유니언 퍼시픽 철도(UPRR)와 센트럴 퍼시픽 철도(CPRR)가 만나 마침내 미국은 동부와 서부를 잇는 철도를 완성했다. CPRR의 회장 레랜드 스탠퍼드는 금으로 만든 ‘마지막 스파이크’를 은망치로 두드리며 철도 개통을 축하했다. 이후 6개월 동안 새크라멘토에서 샌프란시스코 만까지의 마지막 구간이 완성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 서부의 정착과 경제는 혁신적으로 변화하였고, 서부 주와 준주가 북부 연합 주와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승객과 화물의 운송은 훨씬 더 빠르고 안전하며 저렴해 졌다.
첫 번째 대륙횡단 철도 승객들은 1869년 9월 6일 태평양 철도의 최초 서부 종착지인 알라메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증기선 알라메다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다. 철도의 종착지는 두 달 후인 1869년 11월 8일, 북쪽으로 약 1마일 떨어진 오클랜드 롱 워프로 옮겨졌고, 승객들에게 개방되었다.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피어 간의 서비스는 페리를 통해 계속 제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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