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백인이었다. 이들은 장인환과 전명운에 대해 “두 놈을 죽여 버려라”, “목을 매 죽이자”, “저 동양인 악마를 처형하라”고 아우성들이었다. 그 때 한인 대표 이학현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우리는 야만적인 일제로부터 피해온 사람들이며 이 일은 미국이 대영제국과 벌린 독립전쟁과 같은 것”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현장을 목격한 한 미국부인은 나무상자 위에 올라가 “이 사람은 비록 황인종이지만 과연 애국지사요 의기 있는 남자다. 자기 나라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희생하였으니 누구를 막론하고 일반 국민 된 자는 자기나라를 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여야 한다”고 이학현에 동조하는 연설을 했다. 역시 현장에 있었던 선우탄의 증언에 의하면 배웅을 나왔던 일본영사 고이께는 어쩔 줄 모르고 경찰에게 호신을 요청하며 피신했다고 한다.
미국의 상황과 언론의 반응
스티븐스가 워싱턴에서 일본의 한국합병의 정당성을 말하기 전 사실 미국정부는 일본정책을 내적으로 승인했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조차 “한국 사람은 자기 나라의 방어를 위해서 손가락하나 쳐들지 못하는 민족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정부는 ‘태프트-가쯔라 비밀조약’을 맺어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것을 인정했었다. 그것은 공식적으로 발표되거나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사실이 아니었으나 워싱턴 지도층에서는 이해가 된 일이었다. 테프트-가쯔라 비밀조약이란 1905년 7월 29일 미국과 일본 사이에 맺은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일본은 미국이 필리핀에 취하는 조치에 대해 어떤 적극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조약이다.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서로 나눠 가지면서 서로가 양해한 패권주의적 발상의 약속이었다. 스티븐스의 역할은 일본정부뿐만이 아니라 미국정부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1904~1905년에 일어난 러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일본은 러시아 및 중국과 맞닿아 있는 반도나라 한국에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도 일본이 한국을 간섭하는 것을 인정했다. 한국은 일본이 지정하는 제3국의 사람을 재정과 외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두기로 했는데 1904년 8월 친일파 스티븐스가 이에 취임한 것이다. 1905년 11월 17일에 이르러는 한국의 모든 외교적 계약 권한은 일본에 있다는 5조약까지 맺게 된다. 이어서 모든 법적 지위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다는 조약을 맺었다.
3월 23일 아침에 일어난 스티븐스 저격사건은 다음날 샌프란시스코와 여러 대도시의 신문에 스티븐스를 저격한 두 한국청년 이야기로 다뤄졌다. 두 사람이 가졌던 애국적 인식과 스티븐스에 대한 한인들의 분노를 보도했다. 마침 미국 하층민들 사이에 일본인 노동자 배척운동이 벌어졌던 시기라 이 일은 미국시민들로부터 큰 이해와 동정을 살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기사
다음날 크로니클지 는 헤드라인으로 스티븐스 저격사건을 다뤘다. 기도하고 살인 계획이라는 제목 하에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사진은 물론 장인환의 저격 장면과 전명운의 타격 장면 등을 묘사한 몇 가지 큰 삽화까지 그려 함께 게재했다. 기사는 일제나 스티븐스 측을 두둔하는 코멘트도 싣고 있었으나 장인환과 전명운의 행위를 정당하고 애국적이라고 말하는 한인사회의 모습에 비중을 두었다. 스티븐스 저격사건과 관련한 주요 크로니클 신문 기사를 날짜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을사보호조약 후 민영환의 자살은 장인환의 거사동기가 되었다. 공립협회에는 민영환의 사진이 붙어 있어 한인들은 드나들면서 항일정신과 독립심을 키웠다고 한다.
▷ 1908. 3. 21: 스티븐슨 인터뷰기사 처음에는 한국 관리들이 일본을 환영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관리들도 농민들처럼 일본을 환영하고 있다. 그 까닭은 구식 정부구조를 개량해야 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 1908. 3. 22: ‘스티븐스는 한국의 공적이라고 말하는 한인들’이라는 제목 하에 “한국인들은 이 총성을 찬미할 것이며 일본은 이 보도를 듣고 한국을 폴랜드와 같이 생각할 것”이라고 보도.
▷ 1908. 3. 24: 1면 헤드라인 장식, 2면 전체, 3면의 대부분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 기사를 중심으로 실었다. 불법, 살인 사건으로 보기보다 일본과 관련한 아시아의 정세, 한국의 입장 등 정치적인 사건으로 분석.
이 같은 보도에 일본의 총영사는 당황했다. 그러자 심한 부상으로 생명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도 스티븐스는 “나를 해친 그들은 광신적 젊은 학생들이다. 그들은 일본의 한국보호를 반대하나 그들의 행동은 한일관계에 아무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 1908. 3. 25: 장인환은 경찰관 입회하에 양주삼의 통역으로 전명운과 스티븐스가 함께 치료를 받는 병원에서 스티븐스와 대질하였다. 그 내용이 신문에 실렸는데 장인환이 “너는 우리나라를 판 매국노이다. 너는 우리로부터 돈을 착취한 것밖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고 말했고 스티븐스는 “불쌍한 치한 같으니, 너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다. 너의 무식은 너에게 해롭다. 나는 너의 소행에 대하여 책망하지 않는다. 나는 3년 동안 너의 국민과 같이 살아서 다수의 친구를 갖고 있다. 나는 네가 그것을 알아주기 바란다”고 했다.는 말을 했다. 장인환은 크로니클 신문에 편지를 보내. “왜 내가 스티븐스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나를 생각해보라. 스티븐스는 한국파멸의 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일본에 가담했다. 그는 한국정부의 봉급을 받으며 오히려 일본을 위하고 일본에 의지하여 우리나라 인민에게 허다한 박해를 가했다. 그는 나를 가르쳐 대세를 오해한 치한이라고 했지만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받는 구속 때문에 한국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인의 신용을 사기 위해 ‘한국의 미국인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그는 이곳에 왔다. 스티븐스의 음모로 인해서 수천의 우리 국민은 살해당했고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될 것이다. 나는 우리 동족을 동정한다. 나는 더 이상 스티븐스 때문에 나의 동포가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람의 생명이란 무엇이냐? 사람은 죽을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스티븐스를 죽이고 또 나도 죽으면 우리나라의 영광이며 우리나라 인민의 행복이다.”라고 했다.
상항 일인 신문 신세계보 (1908년 3월 24일)
크로니클 신문이 스티븐스 저격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보는 시각을 가졌던 반면에, 상항에서 발행되던 일인들을 위한 신문 신세계보는 스티븐스 피격을 애석해 하는 기사를 실었다.
명치 16년 이래 가장 충실한 고문관으로 미일공관에 봉직하던 스티븐스(55세)는 왕년에 한국정부의 외교고문이 되었으니…한국정부에 외교고문을 두어야 될 필요가 급박한 당시에 일본인으로 고문을 둘 지경이면 제3국의 오해할 염려가 있을 듯 함으로 외국인 중에 형상은 다르고 마음이 같은 자를 천거할 특권을 가지고….양국의 영원한 복리를 위하여 막대한 공헌을 한자는 실로 스티븐스 그 한 사람이었다……..한인 된 자는 지금에 반성하지 않으면 전도에 당하여 한심함을 가히 익히지 못하겠다.
뉴욕 타임즈
▷ 1908. 3.25: ‘한국 민족은 아직 살아있다’라는 사설에서 “스티브스를 저격한 것은 한국인들의 생존을 위한 표시였고 자기민족의 운명을 자기들의 힘으로 개척하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죽음을 무릅쓰고 형벌에 관계없이 이 젊은 학생들은 고의적으로 용감하게 공개적으로 일본을 돕고 한국을 배신한 사람을 습격했다. 물론 그 행동은 그리 아름답거나 현명한 행동은 못된다. 그러나 칭찬할만하지는 못해도 상당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라는 내용과 함께 한인들의 견해를 실었다. 한편 로스앤젤레스 타임즈,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오클랜드 트리뷴 지 등에서도 대서특필했다. 한 신문은 ‘한국정부 미국관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총을 맞았다’는 제목 하에 ‘한국 독재자 학생의 총에 맞다’라는 부제를 달기도 했다.
공립신보 (1908년 3월 25일)
“애국자 여러분! 참여하라! 권총소리에 각성하라! 우리 정부 내에 반역자들이 너무 많다. 우리나라의 원수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나라에 대한 생각이 있고 정성이 있다면 장인환과 전명운 두 분을 애국자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 동포와 우리나라를 상하게 하는 자를 저격한 것은 정당한 것이다. 2천만 동포는 우리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싸워야한다.”
국민보, 공동신보 등도 장인환 의사의 쾌거는 항일기개를 높이고 미국 여론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크게 보도했다. 국내 신문 대한매일신보는 두 사람이 보기 드문 열렬한 우리 대한의 애국지사라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민중들의 항일정신이 높아지고 일본인 거물 정객들을 암살하는 우국지사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중국의 세계일보는 한국에서는 의병대가 계속 봉기하고 미국에서 스티븐스 암살… 이것은 한국인이 자기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결심을 충분히 표시한 것이다. 용감한 한국 사람들이 아닌가? 위대한 한국이 아닌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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