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경기도 한 지방에서 출생하였다. 1911년 수양동우회 105인 사건에 관련되어 5년간 옥고를 치르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안창호와 손잡고 재미동포를 규합하여 흥사단을 조직하는데 주력하였다. 1913년 11월에는 상항지방 국민회 신입회원이 되어 국민회 일을 도왔다1920년 1월 시카고에서 노백린을 만나 독립군 양성을 계획하고 그 해 2월 북가주 윌로우스에 비행학교를 창설했다. 곽림대는 비행학교 감독이었는데 노백린이 떠난 후에도 계속 비행학교에 남아 있었다.
1926년경부터 미국의 곽림대는 흥사단이 조선 독립의 투사 양성 또는 민족의 실력양성 이후에 혁명을 단행한다는 입장은 미온적이라고 지적, 직접적인 혁명단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에서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20년 8월 윌로스비행학교 교관시절의 곽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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