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m Hyun-gu (1889-1967): U.S. Diplomatic Commissioner
Read in Korean Born in Okcheon, Chungbuk, Kim Hyun-gu studied at Yangjeong School and Boseong Middle School, where he became a member of the Enlightenment Movement organization, the Jaeganghoe. He moved to the United States in April 1909 for his studies and enrolled in Hastings Boys’ Military School, founded by Park Yong-man, where he received…
-
Kim Won-yong (1896-1976): A Testimony to History
Read in Korean Seo-ho Kim Won-yong came to the United States from Shanghai, China, in May 1917 for his studies, but initially delayed his education to participate in patriotic movements. While studying at a university in Ohio, he participated as a founding representative in the Korean Student Association meeting held in San Francisco in April…
-
홍언(1880-1951):시조와 문장의 대가
‘동해수부’라는 필명을 가지고 있던 홍언은 서울에서 출생했다. 문예에 소질이 있던 선비로 공부를 목적으로 1905년 하와이로 이민 왔다. 1906년 하와이에서 ‘자강회 월보’와 1907년 하와이 24개 단체를 합쳐 한인합성협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한인합성신보의 주필이 되었다. 또한 ‘신한국보’주필이 되어 동포들의 실력향상과 교육 장려를 위해 노력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와서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부회장으로 봉사했으며 1908년부터 4년 동안 신한민보 주필로 일했다. 신한민보에 동해수부라는…
-
문양목(1869-1940):항일투쟁 책 간행
1894년 동학 난에 적극 참여했던 문양목은 반봉건・반외세를 일찍이 깨우친 지식인이었다. 서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중 기울어 가는 국운을 비통하게 여기며 1905년 하와이 이민선을 올라탔다. 1906년에는 샌프란시스코로 와서 대동보국회를 결성하고 중앙회장이 되고 동회의 기관지인 대동공보사 사장 겸 발행인을 지냈다. 스티븐스가 망언 기자회견을 했을 때 이를 항의하기 위해 갔던 한인 대표 4명중 한 명이다. 스티븐스를 만나 발언을…
-
김현구(1889-1967):주미 외교위원
Read in English 충북 옥천에서 출생해 양정학교와 보성중학에서 신학문을 익히고 계몽운동단체인 자강회 회원이 됐다. 유학으로 1909년 4월에 미국으로 와서 박용만의 군사학교인 헤이스팅 소년병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1918년 오하이오 콜럼버스 대학에서 정치와 철학을 공부하고 문학사학위를 받았다. 1919년 1월 북미 대한인국민회 임명을 받고 신한민보 주필로 일했다. 콜럼버스대학 시절에는 학생회에서 발행한 ‘소년한국(Young Korea)’ 을 책임졌다. 이 책은 주로…
-
김원용(1896-1976):역사를 증언하다
Read in English 서호 김원용은 중국 상해에서 1917년 5월 유학으로 미국에 왔으나 처음엔 학업은 미룬 채 애국운동에 가담했다. 오하이오의 대학에 재학 중인 1920년 4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인학생 총회 결성 회의에 발기인 대표로 참가했다. 1923년부터 7년간은 미국 중서부와 동부지방에서 생업에 힘쓰며 독립운동 후원을 위한 지방조직 결성에 노력했다. 1930년 6월 미주대표의 사명을 가지고 재미한족연합회에 참석하고 독립운동강화 촉진을…
-
김성권(1875-1960):도산 정신을 이어간 문필가
Read in English 1904년 29세의 나이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왔다. 천성적으로 노동이 맞지 않아 고생하자 이를 본 친구 강영소가 하와이 애와농장에 조그만 점포를 하나 내주었다. 농기구와 음식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러나 외상값을 회수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1908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와서는 미국인 가게에 점원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고향 경주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동생 둘을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