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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용(1881-1964):일생을 선교에 바치다
Read in English 1904년에 미국에 온 그는 일생을 선교 사업에 바쳤다. 1908년 아세아실업주식회사를 창립하여 한인의 실업을 장려하였다. 1909년 5월 멕시코에 이주한 동포들이 농장의 노예노동에서 풀려나는 때에 북미국민회 총회에서는 황사용과 방화 중 두 위원을 멕시코로 보내 실정을 알아보고 돕게 하였다. 5월 20일경 유카탄주의 프로그레소항에 도착하였는데 그것은 한인노동자들이 발을 들여놓은 이래 처음 가는 한인이었다. 처절한 노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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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선(1885-):상항 한인감리교회
Read in English 1885년 10월18일 평북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형 황사용 목사의 집에 살면서 일찍 기독교영향을 받았다. 성실학교와 성실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을 받고 선생을 하면서 애국모임인 신민회에서 활동했다. 일본경찰에서 잡으려 하자 중국 사람으로 변장을 하고 상하이를 통해 1913년 4월21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미국정부로부터 비공식 승인을 받은 대한인국민회(KNA)대표인 이대위목사의 보증으로, 여권 없이 미국에 왔으나 입국이 가능했다.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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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언(1880-1951):시조와 문장의 대가
Read in English ‘동해수부’라는 필명을 가지고 있던 홍언은 서울에서 출생했다. 문예에 소질이 있던 선비로 공부를 목적으로 1905년 하와이로 이민 왔다. 1906년 하와이에서 ‘자강회 월보’와 1907년 하와이 24개 단체를 합쳐 한인합성협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한인합성신보의 주필이 되었다. 또한 ‘신한국보’주필이 되어 동포들의 실력향상과 교육 장려를 위해 노력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와서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부회장으로 봉사했으며 1908년부터 4년 동안 신한민보 주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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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호(1893-1994):미주 공군부대 창설에 기여
Read in English 평양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한장호는 일생을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다가 샌프란시스코 근교 밀벨리에서 100세에 사망하였다. 19세에 일제의 압박에 못 이겨 할아버지가 챙겨주는 돈과 옷을 가지고 한 밤중에 부모에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도망을 하였는데 다시는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1913년 상해에서 일하면서 미국으로 오기 위한 여비를 마련하였다. 그가 미국으로 가고자 한 목적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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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하(1889-1967):국민회 발전에 27년간 봉사
Read in English 평남에서 출생하여 유학을 목적으로 1916년 9월 미국에 왔다. 이듬해 1월 북미대한인국민회 총무로 임명돼 국민회 발전과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노력했다. 1919년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의 군사 및 외교활동을 적극 후원했다. 1921, 1923, 1924, 1935년 등 총 회장으로 여러 번 당선되어 단체 발전과 독립운동후원에 몸을 바쳤다. 1936년 6월에 국민회 부흥과 개량에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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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윤(1914-2005):서울대 정치학과 창설자
Read in English 최봉윤 교수는 1914년 평북의주 출생으로 학생시절 성경학교와 수양회를 개최하여 한글을 가르치는 등 문맹퇴치와 민족정신 고취활동을 전개했다. 일본청산학원을 졸업하고 1938년 도미했다. UC Berkeley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World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학생회에서 부인과 함께 미 서부지역 간부를 지냈다. 버클리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는데 한국어과를 개설할 만한 예산이 없어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치며 버클리대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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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능익(1889-1976):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를 조직
Read in English 1889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나 1916년 조국의 독립과 항일 투쟁을 목적으로 미국에 망명했다. 북가주 윌로우스지방의 대학에 재학한 그는 1920년 4월 그 지역 대표로 학생총회 결성대회에 참가하여 총회결성 발기자회를 조직하고 미주한인학생들의 친목과 항일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자신이 거주하던 윌로우스에 마침 한인 비행사양성소가 설립되자 학생으로 입소했다. 5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군대교련을 받으며 항일투쟁의지를 굳혔다. 1939년에는 중국피난민후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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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경(1891-1985):한인친우회를 조직
Read in English 정한경은 어린 나이에 박용만의 삼촌이 되는 박장현이 고향에다 세운 대학교에 다니면서 신학문에 눈을 떴다. 1904년 14살의 나이로 새 학문을 배워보고 싶어 하와이로 왔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왔다.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내려 한인교회에서 접시 닦기와 음식을 만드는 일을 1년간 하였다. 처음 도산이 정한경을 만났을 때 “정군은 보통사람이 아니니까 남의 밑에서 일하지 말고 미국신문에 논설을 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