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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겸(1881-1955):독립운동과 사업, 그리고 평생의 기록을 남겼다.
Read in English 방사겸(1881년 7월 25일~1955년 12월 8일)은 평양에서 태어나 1903년, 23세의 나이에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사탕수수 농장에서의 고된 노동 속에서 그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고, 결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학업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곳에서 안창호를 만나며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후 평생을 독립운동과 사업에 헌신하며 기록을 남겼다. 독립운동의 길 1905년, 방사겸은 장경과 함께 대동교육회를 창립하고 한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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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목(1869-1940):동학혁명 참가 후 미국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
Read in English 동학혁명 당시 농민군으로 가담 문양목(1869.6.7 ~ 1940.12.25)은 충청남도 서산 출신으로, 일찍이 반봉건·반외세의 의식을 가진 지식인이었다. 1894년 동학혁명이 발발하자 25세의 나이에 농민군에 가담하여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나 혁명이 실패하자 체포될 위기에 처했으며,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1903년 인천에서 서당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던 그는, 점차 노골화되는 일본의 한국 침탈에 분노하며 국권 회복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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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백린(1875-1926):윌로우스 비행학교
Read in English 계원 노백린은 황해도 송화군 풍해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뛰어나 주위로부터 장군감이라고 칭송을 받았다. 고향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상경하여 1895년 정부에서 뽑는 전국의 수재 120인에 뽑혀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간다. 이갑, 유동열, 윤치성과 일본에서 경응의숙을 졸업했다. 그 해에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의 정변이 일어나고 친일당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하자 정부에서는 유학생들에게도 역당의 누명을 씌워 학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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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1889-1967):주미 외교위원
Read in English 충북 옥천에서 출생해 양정학교와 보성중학에서 신학문을 익히고 계몽운동단체인 자강회 회원이 됐다. 유학으로 1909년 4월에 미국으로 와서 박용만의 군사학교인 헤이스팅 소년병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1918년 오하이오 콜럼버스 대학에서 정치와 철학을 공부하고 문학사학위를 받았다. 1919년 1월 북미 대한인국민회 임명을 받고 신한민보 주필로 일했다. 콜럼버스대학 시절에는 학생회에서 발행한 ‘소년한국(Young Korea)’ 을 책임졌다. 이 책은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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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림(1884-1973):쌀의 왕으로 불린 큰손
Read in English 김종림은 당시 ‘Rice King(쌀의 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한인 중에 가장 많은 농토를 가지고 경작을 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는 번 돈으로 한인 사회 도처에 필요한 곳은 물론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기부하였고, 비행학교를 설립해 모든 재정을 뒷바라지한 통이 큰 사업가였다. 1916년 당시 윌로우스에서 4천3백 에이커에 벼농사를 지었는데 연 수입규모가 백만 달러가 넘었으며 당시 캐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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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1896-1976):역사를 증언하다
Read in English 서호 김원용은 중국 상해에서 1917년 5월 유학으로 미국에 왔으나 처음엔 학업은 미룬 채 애국운동에 가담했다. 오하이오의 대학에 재학 중인 1920년 4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인학생 총회 결성 회의에 발기인 대표로 참가했다. 1923년부터 7년간은 미국 중서부와 동부지방에서 생업에 힘쓰며 독립운동 후원을 위한 지방조직 결성에 노력했다. 1930년 6월 미주대표의 사명을 가지고 재미한족연합회에 참석하고 독립운동강화 촉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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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권(1875-1960):도산 정신을 이어간 문필가
Read in English 1904년 29세의 나이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왔다. 천성적으로 노동이 맞지 않아 고생하자 이를 본 친구 강영소가 하와이 애와농장에 조그만 점포를 하나 내주었다. 농기구와 음식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러나 외상값을 회수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1908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와서는 미국인 가게에 점원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고향 경주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동생 둘을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