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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Won-yong (1896-1976): A Testimony to History
Read in Korean Seo-ho Kim Won-yong came to the United States from Shanghai, China, in May 1917 for his studies, but initially delayed his education to participate in patriotic movements. While studying at a university in Ohio, he participated as a founding representative in the Korean Student Association meeting held in San Francisco in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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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Gyu-sik (1881 – 1950): Active as a representative at the Paris Peace Conference
Read in Korean Born in Gyeongnam, he went to study in the United States in 1897, where he studied literature at Roanoke University and completed his master’s degree at Princeton University in 1904. After returning to Korea in 1905, he served as the secretary-general of the Gyeongseong Youth Association and concurrently held positions as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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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영(1892-1982):독립금을 걷기 위해 발로 살았다
1913년 20세의 나이로 유학차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로스앤젤레스, 다뉴바,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60년을 오로지 대한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3.1운동이후 다뉴바에서 국민회 지방회장을 지내며 200여 한인들을 모아 대회를 열고 바로 그 자리에서 독립금을 거두었다. 혼자 서 한인이 사는 곳이면 찾아가서 독립금을 거두어서 이승만에게 보냈다. 포도장사 하던 것도 소홀히 하고 일 년 내내 한인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다녔다. 싼타바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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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구(1882-1949):유엔 평화회의 한국대표
서울에서 출생하여 구한말 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신자가 되었다. 서울에서 선교사 통역관으로 활동하다 하와이 이민들이 목사 파송을 요청하자 목회를 하려고 도미하였다. 하와이에서 신민회와 ‘애바친목회’를 결성하고 1905년 이승만과 루즈벨트 대통령을 찾아가 독립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1906년 ‘시사신보’를 창간했으며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했다. 1909년 샌프란시스코 상항한인감리교회에 전도사로 취임하여 2년간 시무했다. 1919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지방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미국인 사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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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목(1869-1940):항일투쟁 책 간행
1894년 동학 난에 적극 참여했던 문양목은 반봉건・반외세를 일찍이 깨우친 지식인이었다. 서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중 기울어 가는 국운을 비통하게 여기며 1905년 하와이 이민선을 올라탔다. 1906년에는 샌프란시스코로 와서 대동보국회를 결성하고 중앙회장이 되고 동회의 기관지인 대동공보사 사장 겸 발행인을 지냈다. 스티븐스가 망언 기자회견을 했을 때 이를 항의하기 위해 갔던 한인 대표 4명중 한 명이다. 스티븐스를 만나 발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