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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림(1884-1973):쌀의 왕으로 불린 큰손
Read in English 김종림은 당시 ‘Rice King(쌀의 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한인 중에 가장 많은 농토를 가지고 경작을 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는 번 돈으로 한인 사회 도처에 필요한 곳은 물론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기부하였고, 비행학교를 설립해 모든 재정을 뒷바라지한 통이 큰 사업가였다. 1916년 당시 윌로우스에서 4천3백 에이커에 벼농사를 지었는데 연 수입규모가 백만 달러가 넘었으며 당시 캐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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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권(1875-1960):도산 정신을 이어간 문필가
Read in English 1904년 29세의 나이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왔다. 천성적으로 노동이 맞지 않아 고생하자 이를 본 친구 강영소가 하와이 애와농장에 조그만 점포를 하나 내주었다. 농기구와 음식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러나 외상값을 회수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1908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와서는 미국인 가게에 점원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고향 경주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동생 둘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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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1881-1950):파리 평화회의 대표로 활약
Read in English 경남에서 출생하여 1897년 미국에 유학을 와 로녹대학(Roanoke University)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1904년 프린스턴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1905년 귀국하여 ‘경성청년회’총무를 맡았고 경신학교 교감과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겸임했다. 1913년 중국으로 가서 해외민족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월 상해 임시정부 한국대표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평화회의에 가서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 진정서를 제출하려 했으나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임시정부 수립 후 의무총장과 학무총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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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k Rim-dae (1884–1971), Director of the Willows Aviation School
Read in Korean Kwak Rim-dae was born in a rural area of Gyeonggi Province in 1884. In 1911, he was implicated in the 105-Man Incident related to the Syuyang Dongwoo Association and served five years in prison before fleeing to the United States. There, he joined forces with Ahn Chang-ho to unite Korean immigrants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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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여자애국단을 창설한 강원신(1887-1977)
Read in English 평남 평양에서 태어나 1904년 강영승과 결혼하고 1905년 5월 도릭 선편으로 남편 가족과 하와이로 왔다. 하와이에서 노동을 하며 남편 학업 뒷바라지를 했으며 남편이 시카고에서 법학박사 과정을 밟게 되자 시누이 강혜원과 함께 남편의 학업을 계속 뒷바라지했다. 캘리포니아주 다뉴바로 이주하여 포도농장에서 일하면서 집에서 손으로 빨래하는 세탁일로 생계를 삼았다. 1919년 3월2일 다뉴바 지방에서 강혜원, 한성선, 김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