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낭만을 이야기할 때 케이블카와 아름다운 다리들을 빼놓을 수 없지만, 이 도시의 성장과 미국 서부 개척사에서 ‘철도’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지리적 한계로 대륙횡단철도의 종착역이라는 영광을 온전히 누리지는 못했지만, 샌프란시스코와 그 주변 지역은 철도와 함께 울고 웃으며 격동의 시대를 헤쳐왔습니다. 오늘은 샌프란시스코를 둘러싼 철도 이야기를 통해 도시의 역사와 미국의 꿈을 함께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특히, 미국 대륙을 하나로 묶었던 대륙횡단철도 건설의 드라마와 그 여파가 샌프란시스코와 인근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겠습니다.
1. 독립의 함성 속, 태동하는 서부의 관문 (1770년대)
1776년, 미국 동부에서 독립의 불꽃이 타오르던 그 무렵, 태평양 건너편 샌프란시스코 만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1769년 스페인 탐험가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Gaspar de Portolà)가 이끄는 탐험대가 우연히 발견한 이 거대한 만은, 곧이어 ‘예르바 부에나(Yerba Buena)’라는 이름의 작은 정착촌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1776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요새(Presidio)와 미션 돌로레스(Mission Dolores)가 설립되면서 유럽 문명의 발길이 본격적으로 닿기 시작했죠. 이때만 해도 캘리포니아는 머나먼 스페인 영토의 변방이었고, ‘철도’라는 단어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2. 멕시코와의 갈등, 그리고 동부에서 시작된 철도의 꿈 (1840년대)
시간이 흘러 1840년대, 샌프란시스코는 멕시코 영토였습니다. 이 시기 미국은 서부로의 팽창을 거듭하며 멕시코와 갈등을 겪었고, 결국 1846년 미국과 멕시코간의 전쟁이 발발합니다. 이 무렵 미국 동부에서는 이미 철도 건설이 한창이었습니다. 증기기관차는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동력이었고,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며 도시와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험준한 산맥과 광활한 사막으로 가로막힌 서부 해안까지 철길을 놓는다는 것은 아직 요원한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3. 남북전쟁의 포화 속, 대륙을 잇는 위대한 도전: 대륙횡단철도의 서막 (1860년대)
1861년, 미국은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입니다. 국가 분열의 위기 속에서도 서부, 특히 캘리포니아가 연방에서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링컨 대통령으로 하여금 태평양 철도법(Pacific Railroad Act)에 서명하게 만드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마침내 1862년, 동쪽에서 **유니언 퍼시픽 철도회사(Union Pacific Railroad)**가, 서쪽에서 **센트럴 퍼시픽 철도회사(Central Pacific Railroad)**가 대륙을 잇는 철도 건설이라는 위대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구체적으로 이 공사는 샌프란시스코의 북쪽 캘리포니아의 주도 새크라멘토와 오마하(Omaha, 네브래스카)를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이전에 동부에서 오마하까지는 이미 철도가 있었다고 해야겠지요. 당시 미국 동부의 철도망은 이미 상당히 발달해 있었고, 미시시피 강 동쪽으로는 여러 철도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노선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유니언 퍼시픽 철도의 출발점으로 지정된 오마하는 이러한 동부 철도망의 서쪽 끝 지점 중 하나였으며, 이곳에서부터 미지의 서부를 향해 철길을 놓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즉, 대륙횡단철도 프로젝트는 기존 동부 철도망과 새로 건설될 서부 철도망을 연결하여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거대한 그림이었던 셈입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 소식에 열광했습니다. 대륙횡단철도의 서부 종착역이 된다는 것은 곧 엄청난 번영을 의미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센트럴 퍼시픽의 주역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유력 자본가들이 아닌, 새크라멘토의 네 명의 상인 – 훗날 ‘빅 포(Big Four)’라 불리게 될 리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 콜리스 헌팅턴(Collis P. Huntington), 마크 홉킨스(Mark Hopkins), 찰스 크로커(Charles Crocker) – 였습니다. 이들은 시어도어 주다(Theodore Judah)라는 열정적인 엔지니어의 비전에 매료되어 철도 건설에 뛰어들었습니다. ‘미친 주다(Crazy Judah)’라고도 불렸던 그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스물세 번이나 넘나들며 험준한 지형을 극복할 철도 노선을 구상했고, 그의 끈기와 열정은 마침내 빅 포의 투자를 이끌어냈습니다.

Source: https://junior.scholastic.com/ Jim McMahon/ Mapman®
4. 금못이 박히던 순간: 두 철도의 감격적인 만남과 그 의미
혹독한 자연환경과 인력 부족, 자금난 등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유니언 퍼시픽과 센트럴 퍼시픽은 경쟁적으로 철길을 놓아갔습니다. 유니언 퍼시픽은 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남북전쟁 참전용사들을 고용했고, 센트럴 퍼시픽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노동력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특히 센트럴 퍼시픽은 깎아지른 듯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야 하는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공사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1869년 5월 10일, 유타 주 프로먼토리 서밋(Promontory Summit)**에서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졌습니다. 동쪽에서 달려온 유니언 퍼시픽의 기관차 ‘No. 119’와 서쪽에서 달려온 센트럴 퍼시픽의 기관차 ‘주피터(Jupiter)’가 마주 섰고, 마지막 레일못(Spike)을 박는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양사 관계자들과 노동자들, 그리고 기자들이 모여들었고, 금으로 만든 ‘골든 스파이크(Golden Spike)’를 비롯한 여러 기념 스파이크가 박히는 순간, 전신을 통해 전국으로 “DONE!” (완성!)이라는 메시지가 타전되었습니다. 샴페인이 터지고 환호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수천 마일에 걸쳐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길이 마침내 하나로 이어진, 그야말로 “세기의 위업”이 완성된 순간이었습니다.
이 대륙횡단철도의 완성은 미국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부와 서부 간의 이동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었고 (마차로 수개월 걸리던 것이 기차로 일주일 이내로), 물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서부 개척과 산업 발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또한, 미국을 물리적으로 하나로 묶음으로써 국가적 통합을 강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5. 만(灣) 건너편의 종착역, 샌프란시스코의 아쉬움과 노력
대륙횡단철도의 완성은 샌프란시스코에 엄청난 기대를 안겨주었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지리적으로 반도 끝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는 철도의 직접적인 종착역이 되기 어려웠습니다. 센트럴 퍼시픽은 만 건너편 **오클랜드(Oakland)**를 주요 터미널로 삼았고, 샌프란시스코는 페리를 통해 오클랜드와 연결되어야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실망했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를 잇는 철도는 대륙횡단철도보다 먼저 완성되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샌프란시스코 & 산호세 철도(San Francisco and San Jose Railroad)는 1860년에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여 1864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는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기 5년 전의 일입니다. 이 철도는 샌프란시스코와 남부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 센트럴 퍼시픽에 인수되어 서던 퍼시픽(Southern Pacific) 철도의 일부가 됩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예르바 부에나 섬(Yerba Buena Island)을 통해 오클랜드와 직접 연결되는 철도 다리 건설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여러 정치적, 기술적 문제로 무산되었습니다. 하지만 미션 베이(Mission Bay) 지역에 서던 퍼시픽과 산타페(Santa Fe) 철도의 화물 터미널이 들어서면서 샌프란시스코 남부 지역은 철도 중심의 물류 허브로 발전하게 됩니다. 특히 1896년부터 운영된 벨트라인 철도(Belt Line Railroad)는 모든 부두와 철도를 연결하며 효율적인 화물 운송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비록 육상 종착역은 아니었지만, 페리와 벨트라인 철도를 통해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대륙횡단철도의 중요한 관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6. 작은 마을 Orinda오린다에도 철길이? 철도 건설 붐과 지역 철도의 꿈
제가 현재 살고 있는 오린다(Orinda)에도 작은 기차역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이 작은 마을에 어떻게 철도가 연결되었을까요? 이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전역을 휩쓴 철도 건설 붐과 관련이 깊습니다.
오린다에 놓였던 철도는 **캘리포니아 & 네바다 철도(California and Nevada Railroad, C&N Railroad)**였습니다. 1884년 3월 25일에 설립된 이 협궤 철도 회사는 오늘날 에머리빌(Emeryville)이라는 지명에 이름을 남긴 J.S. 에머리가 사장을 맡았습니다. 1885년 3월 1일, 에머리빌을 거쳐 오클랜드와 산 파블로를 잇는 첫 구간이 완공되었고, 1887년 1월 1일에는 오크 그로브(현재의 엘 소브란테)까지 연장되었습니다.

마침내 1891년, C&N 철도는 에머리빌에서 오린다까지 총 23마일(약 37km)에 이르는 노선을 완성하고 첫 기차가 오린다에 들어왔습니다. 이 철도는 주로 농산물과 승객을 실어 날랐으며, 몇 년 동안은 일요일이면 소풍객들을 가득 태운 기차가 오린다를 찾아와 이 지역을 인기 있는 주말 나들이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 작은 철도에 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에머리빌에서 시작하여 소노라 패스를 넘어 보디(Bodie) 금광 지대를 지나 콜로라도까지 연결하여 덴버 & 리오 그란데 웨스턴 철도(Denver & Rio Grande Western Railroad)와 접속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자금난, 이용객 부족, 그리고 겨울철 홍수 피해 등이 겹치면서 이 야심찬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C&N 철도는 1904년에 운행을 중단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오린다 커뮤니티 파크에는 이 잊혀진 철도의 역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당시 철교 구조물의 마지막 남은 기둥 일부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오린다의 C&N 철도 이야기는 당시 철도 건설 붐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났으며, 작은 지역 사회까지 철도를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되고자 했던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비록 단명했지만, 이 철도는 한때 오린다 지역의 발전에 기여하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을 것입니다.
7. 칼트레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통근 열차
이러한 철도 건설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칼트레인(Caltrain)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칼트레인의 핵심 노선은 앞서 언급된 샌프란시스코 & 산호세 철도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도심 4번가 & 킹 스트리트 역(4th and King Street Station)에서 시작하여 실리콘밸리의 중심 도시들을 거쳐 남쪽 길로이(Gilroy)까지 이어지는 이 노선은, 과거에는 승객과 화물을 함께 운송했지만 점차 통근자들을 위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발전해왔습니다.
8.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철길
한때 샌프란시스코의 번영을 이끌었던 철도는 자동차와 항공 교통의 발달로 그 위상이 예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광역 급행 전철인 바트(BART)는 도심과 공항, 그리고 이스트 베이와 남부 지역을 빠르고 편리하게 연결하며, 칼트레인은 실리콘밸리 통근자들의 든든한 발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앰트랙(Amtrak)은 장거리 여객 수송을 담당하며 미국 전역으로 향하는 철도 여행의 낭만을 선사합니다.
오클랜드의 잭 런던 스퀘어(Jack London Square)에는 과거 철도역의 흔적이 남아있고, 샌프란시스코 페리 빌딩 역시 한때 페리와 기차를 연결하는 중요한 환승 지점이었습니다. 이렇게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철도의 흔적들은 샌프란시스코가 철도와 함께 성장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실리콘밸리의 심장을 가로지르는 칼트레인(Caltrain) 완전 정복!
샌프란시스코와 그 주변 지역의 철도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를 잇는 핵심 노선, **칼트레인(Caltrain)**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칼트레인의 역사와 노선, 요금, 그리고 스마트한 이용 팁까지! 칼트레인을 타고 떠나는 특별한 여행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금문 너머, 샌프란시스코의 철길 위에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숨결, 그리고 미래를 향한 기대가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이 도시를 여행하며 잠시 철도의 역사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속에서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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