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떠나는 시간 여행: 샌프란시스코 도시 해부학


샌프란시스코는 오늘날 미국의 서부 관문으로 통합니다. 가로 7마일, 세로 7마일(약 11km)의 작은 사각형 안에 압축된 이 도시는 반도 끝이라는 지형적 특성 덕분에 도시가 들어서기에 최적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도시의 이름을 딴 ‘샌프란시스코 만(Bay)’은 미국 최대의 화물항 중 하나죠. 하지만 평면 지도로만 보면 우리는 이 도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놓치기 쉽습니다. 바로 이 도시가 세워진 ‘언덕들’입니다.


1. 도시의 탄생과 골드러시 (1780년대 ~ 1850년대)

샌프란시스코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아주 오래전, 이곳에는 수천 년간 터전을 잡고 살던 원주민 ‘올로니(Ohlone)’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1780년대에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와 ‘미션 돌로레스(Mission Dolores)’ 성당을 지었습니다. 이 성당은 오늘날까지도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남아있으며, 이곳이 바로 도시의 모태가 된 ‘미션 디스트릭트(Mission District)’입니다. 지금도 이 위치는 도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848년, 오늘날 우리가 아는 샌프란시스코를 만든 두 가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첫째, 미국이 멕시코-미국 전쟁에서 승리하며 이 땅을 차지했고, 둘째, 금(Gold)이 발견되었습니다. 1846년 고작 200명이었던 인구는 불과 6년 만인 1852년에 36,000명으로 폭발했습니다. 도시는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세워졌습니다.



2. 금융지구 아래 묻힌 선박들의 비밀

인구만 늘어난 것이 아닙니다. 지형 자체가 변했죠. 1846년 지도를 보면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길은 ‘몽고메리 스트리트(Montgomery St)’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곳은 바다에서 꽤 떨어진 빌딩 숲입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당시 황금을 찾으러 온 광부들은 마음이 너무 급한 나머지 타고 온 배를 그냥 바다에 버려두고 산으로 떠났습니다. 주인 잃은 배들이 서로 부딪히고 해안가로 밀려와 쌓였는데, 이를 ‘로튼 로(Rotten Row, 썩은 줄)’라고 불렀습니다. 이 배들이 나중에 매립지의 토대가 되었고, 오늘날 금융지구의 수많은 빌딩이 바로 이 ‘버려진 배들’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지도는 당시 바다가 어디까지였는지 정확히 보여줍니다.

군대는 이 가치 있는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스페인의 요새였던 ‘프레시디오(Presidio)’를 인수했습니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매우 활발한 기지였고 지금은 국립공원으로 사랑받고 있죠. 또한 샌프란시스코 만의 작은 섬 ‘알카트라즈(Alcatraz)’에는 서부 해안 최초의 등대와 악명 높은 고위험 수용소가 세워졌습니다.

골드러시는 이민자들도 불러모았습니다. 중국인들이 건너와 미국 최초의 치나타운을 세웠는데, 이곳은 현재 북미 최대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규모입니다. 이탈리아인들 역시 이주해와 어업을 시작하며 피셔맨스 워프(Fisherman’s Wharf)와 피어 39를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되었죠.


3. 언덕과 싸운 도시 설계자들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람들은 기존의 도시 설계 안으로 모여들었는데, 사실 그 설계는 그리 훌륭하지 못했습니다. 1837년 당시 ‘예르바 부에나(샌프란시스코의 옛 이름)’라고 불리던 이 지역을 설계한 장 자크 비오제(Jean Jack Vioget)는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스페인에서 보던 격자무늬(Grid) 설계를 샌프란시스코의 험준한 언덕 지형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대로 적용해버렸습니다. 오직 ‘콜럼버스 애비뉴(Columbus Ave)’만이 기존의 오솔길을 따라 만들어져 지형의 높낮이에 순응한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골드러시로 진짜 부자가 된 사람들은 광부가 아니라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사업가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도시 설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약 10년 뒤 새로운 설계자 재스퍼 오파렐(Jasper O’Farrell)이 디자인을 개선하려 왔을 때, 그는 지주들의 눈치도 봐야 했습니다.


오파렐의 격자 설계는 오늘날 마켓 스트리트 남쪽 지역인 ‘소마(SoMa)’ 지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두 격자 설계를 연결하기 위해 ‘마켓 스트리트(Market Street)’를 설계했는데, 다른 길들에 비해 매우 평탄하고 넓은 것이 특징입니다. 엠바카데로에서 트윈 픽스까지 직선으로 이어지죠. 하지만 당시 지주들은 길 폭을 너무 넓게(120피트) 설계했다며 오파렐을 살해 협박까지 하며 도시 밖으로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4. 필요가 낳은 발명: 케이블카와 서부 확장

샌프란시스코의 거친 지형과 부족한 땅 때문에 도시 확장은 늘 퍼즐을 푸는 것과 같았습니다. 모래가 많고 가파른 언덕은 숙련된 설계자에게도 고역이었죠. 가파른 언덕에서 격자 설계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해결사가 등장합니다. 187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케이블카’가 발명된 것입니다.

케이블카는 광산의 운반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덕분에 골짜기에만 머물던 도시가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유층들이 처음 정착한 ‘노브 힐(Nob Hill)’이 대표적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러시안 힐’, ‘포트레로 힐’처럼 언덕 이름이 곧 동네 이름인 경우가 많은데, 모두 케이블카 덕분에 가능해진 일입니다.

또한 도시는 바다에 닿을 때까지 서쪽으로 계속 팽창했습니다. 당시 ‘아웃사이드 랜드’라 불리던 서쪽의 거대한 사구(모래 언덕)를 뉴욕 센트럴 파크에 버금가는 녹지로 만들기로 결정했고, 1870년 골든게이트 파크가 문을 열었습니다. 공원 끝에는 태평양 너머로 지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오션 비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5. 대재앙과 재건 (1906년 ~ 1930년대)

도시의 기틀이 잡혀가던 1906년,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수도관이 터지고 화재가 발생해 4일 동안 도시가 불탔습니다. 지도는 당시 파괴된 구역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보여줍니다. (항구의 페리 빌딩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였습니다.)

수천 명의 이재민이 골든게이트 파크로 피난을 갔고, 도시 재건 과정에서 확장은 가속화되었습니다. 공원 북쪽의 리치먼드(Richmond) 지구가 이재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빠르게 개발되었습니다. 이곳은 고도 제한(40피트) 때문에 상업 개발이 적어 현재는 아주 비싼 주거 지역이 되었습니다. 공원 남쪽의 선셋(Sunset) 지구와 함께 이 지역을 ‘에비뉴(The Avenues)’라고 부르는데, 길 이름이 스페인 탐험가들의 이름을 알파벳 순서(Anza, Balboa, Cabrillo…)로 따서 지어져 길 찾기가 매우 쉽습니다.

1918년에는 트윈 픽스 터널이 뚫려 언덕 서쪽 개발이 더 활발해졌고, 1936년에는 베이 브릿지, 1937년에는 그 유명한 금문교(Golden Gate Bridge)가 완공되었습니다. 두 다리는 페리에 의존하던 교통 정체를 해소해주었고, 다리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인공 섬인 ‘트레저 아일랜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6. 현대의 샌프란시스코: 다양성과 걷기의 미학

2차 세계대전 당시 샌프란시스코 항구는 태평양 전선의 핵심 요충지였습니다. 당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불명예 제대(Blue Discharge)를 당한 군인들이 이 항구에서 강제 전역 처리가 되었는데, 이것이 역설적으로 샌프란시스코에 강력한 LGBT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후 물류 시스템이 컨테이너화되면서 작은 항구들은 문을 닫고 오클랜드로 주요 항만 기능이 옮겨갔습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계획도 있었으나, 걷기 좋은 도시를 유지하려는 시민들의 반대로 대부분 거부되었습니다. 1989년 지진으로 파괴된 엠바카데로 고가도로를 철거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덕분에 오늘날 샌프란시스코는 관광객들에게 매우 친절하고 걷기 좋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팁 하나! 샌프란시스코는 언덕과 일방통행이 많아 걷는 경로와 운전 경로가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걷다 보면 도시 곳곳에 숨겨진 가파른 언덕 위의 아름다운 계단길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영상의 대본은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가 단순히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지형(언덕)’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케이블카, 매립, 다리)’가 끊임없이 부딪히며 만들어진 결과물임을 말해줍니다. 금융지구 지하에 묻힌 배들의 이야기부터, 살해 협박을 견뎌내며 넓은 길을 만든 설계자의 고집까지.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할 때 이 역사적 ‘레이어’를 기억하신다면, 당신의 발걸음은 훨씬 더 깊이 있는 탐험이 될 것입니다.

과거에 미래를 더하다. 샌프란시스코 1920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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