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대한인국민회

  • 초기 이민사회의 교육열: 배워야 산다2

    초기 이민사회의 교육열: 배워야 산다2

    배워야 산다 1 초기 한인의 교육사업 초기 한인의 교육 사업은 미국물정을 모르고 온 성인들을 가르치는 일과 2세들에게 우리의 말과 글, 문화를 교육하는 일이었다. 하와이에 초기 이민 온 한인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저녁과 토요일에는 한국어학교에 가서 한글을 익혔다. 특히 초기 이민 1세들을 무지에서 깨우는 계몽운동이 필요했다. 이런 의미에서 초기 이민과 더불어 신문발행이 시작된 것은…

  • 초기 한인회:대한인국민회

    Read in English 대한인국민회(1910-1945)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미주에서 단체 통합운동이 일어난 곳은 하와이로 1907년 9월2일 24개의 단체대표 30여명이 4개조의 합동결의안을 통과시켜 ‘한인합성협회’를 조직했다. 이어 미주 대륙에서는 공립협회 측의 안창호, 최정익, 이대위, 강영대, 안석중, 황사용, 이경의 등 6명과 하와이의 민찬호, 이내수, 강영소 등 7명이 미국 전체의 한인을 포함시키는 통합단체를 만들기 위해 실무적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 초기 이민 한인단체

    Read in English 외로웠던 초기 이민들은 모이기를 좋아했다. 하와이 이민은 농장단위로 ‘동회’를 만들고 회장인 ‘동장’을 두었다. 동장은 한인들의 대변자도 되면서 한인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며 규율을 어기는 사람을 처벌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는 공동적인 대의명분을 가졌다기보다는 농장 일을 원할 하게 하고 억울한 피해를 줄이려는 일종의 직장 조직이었다. 이에 비해 1903년 8월 7일 생긴 ‘신민회’는…

  • 샌프란시스코 독립운동사:미주 한인의 독립운동 그리고 군사학교

    샌프란시스코 독립운동사:미주 한인의 독립운동 그리고 군사학교

    Read in English 나라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미주의 한인사회는 자치적으로 조국의 독립운동을 목표로 1909년 2월 강력한 조직체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추진해 나갔다. 러일전쟁 기간 중 ‘주한조선군’이라 칭하던 일본군은 본국에 들어와 재정궁핍을 구실로 한국군대를 해산했다. 1904년 1차로 한국 군인을 반감시킬 때 해산된 군인 중 3백 명 가량은 하와이로 와서 한인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다. 약 2백 명은 샌프란시스코와…

  • 도산 안창호(1878-1938)

    도산 안창호(1878-1938)

    Read in English 도산 안창호(1878-1938)는 1902년 미국에 공부를 하려고 왔다. 그러나 당시 미주한인들이 구심점 없이 방황하고 있는 모습에 이를 안타깝게 여긴 그는 한인사회 계몽운동에 나서게 된다. 구습과 패배주의적 발상에 매인 동포들의 변화와 개조를 강조하며 소망을 주려고 애쓴 사상가였고 생활 운동가였다. 도산은 재미 한인공동체 발전과 결속이 곧 나라를 찾을 수 있는 힘이라고 믿었다. 인재양성과 경제 부흥을…

  • 우성 박용만(1881-1928)

    우성 박용만(1881-1928)

    Read in English 국민군단을 창설한 우성 박용만은 강원도 철원의 양반계급 출신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에 의해 양육됐다. 일본에 건너가 중학교와 게이오 의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박영효 등 개혁파 인사들과 사귀어 정당에 가입했다. 그로 인해 관헌에 체포되었다가 몇 개월 만에 석방됐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박용만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참여해 중견간부가 됐다. 일본의 황무지 개척권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적 활동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