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샌프란시스코 금융 지구(Financial District)의 세련된 빌딩 숲을 걷다 보면, 발밑의 단단한 콘크리트가 한때 넘실거리는 파도였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불과 180여 년 전, 이 반듯한 평지는 초승달 모양으로 움푹 팬 만(灣), ‘예르바 부에나 코브(Yerba Buena Cove)’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라는 대도시가 어떻게 바다를 메워 자신들의 심장부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양 끝을 지키던 두 언덕에 얽힌 지정학적 탄생 비화를 소개합니다.
1. 도시의 두 뿌리:영혼의 미션과 세속의 항구
샌프란시스코의 역사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개의 ‘씨앗’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적·군사적 뿌리 (1776년): 스페인 정착민들이 세운 군사 요새 프레시디오(Presidio)와 미션 돌로레스(Mission Dolores) 성당입니다. 현재의 미션 지구(Mission District)는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로, 샌프란시스코의 정신적·문화적 기틀이 이곳에서 마련되었습니다.
세속적·상업적 심장 (1834년): 우리가 아는 ‘다운타운’의 모태는 예르바 부에나 코브입니다. 1834년, 현재의 차이나타운과 금융 지구 근처에 민간인 마을이 생기며 상업적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마을의 중심이었던 포츠머스 광장(Portsmouth Square)은 이 작은 마을이 ‘샌프란시스코’라는 거대한 이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본 산증인입니다.
2. 만(Cove)을 지키던 북과 남의 두 기둥
매립되기 전, 예르바 부에나 코브는 북쪽의 텔레그래프 힐과 남쪽의 린컨 힐이 마치 양팔을 벌려 바다를 포근하게 감싸 안은 듯한 형상이었습니다.
북쪽의 파수꾼, 텔레그래프 힐: 예르바 부에나 정착지 바로 북쪽에 위치한 이 언덕은 지리적 이점 덕분에 일찍부터 항구 노동자들의 거주지로 발전했습니다. 바다로 들어오는 배들을 감시하고 정보를 전달하던 이곳은 도시의 ‘눈’이자 가장 활기찬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남쪽의 휴식처, 린컨 힐: 반면 남쪽 끝의 린컨 힐은 정착 시기가 조금 늦었습니다. 하지만 1850~60년대 골드러시가 정점에 달했을 때, 안개가 적고 전망이 좋은 이곳은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세련된 부촌으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1848년, 예르바 부에나 섬을 바라본 전경
샌프란시스코로 이름을 바꾼 직후, 예르바 부에나 코브 너머를 바라본 풍경입니다
San Francisco in 1848, not long after being renamed from Yerba Buena, looking to the northeast over Yerba Buena Cove toward Yerba Buena Island. Lithograph by Sarony & Major from sketch by J. C. Ward.
Source: wikipedia.org/wiki/Yerba_Buena,_California
반대로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볼 때는 오른쪽 우뚝 솟은 봉우리가 텔레그래프 힐(Telegraph Hill)이며, 왼쪽의 완만한 모래 경사지 위가 린컨 힐(Rincon Hill)입니다. 이 두 언덕 사이의 움푹 팬 바다가 바로 예르바 부에나 코브입니다.
다음 그림은 샌프란시스코가 아직 ‘샌프란시스코’라는 이름조차 갖기 전, 작은 항구 마을이었던 시절을 보여줍니다. 당시 이곳의 이름은 예르바 부에나(Yerba Buena)였습니다. 스페인어로 “향기로운 풀”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지요.
1846년, 미국 점령 당시의 예르바 부에나 코브
윌리엄 F. 소시 선장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 그림은 금이 발견되기 직전, ‘태풍 전야’와 같은 고요함을 담고 있습니다.
View of the Yerba Buena at the time of the American conquest of California, based on the testimony of Captain William F. Sawsey. Illustration ca. 1884 by the Edward Bosqui Co. Source: https://en.wikipedia.org/wiki/Yerba_Buena,_California

1846년, 미국이 캘리포니아를 점령하던 무렵의 예르바 부에나 코브(현재의 샌프란시스코 만 안쪽 작은 항구)를 그린 그림으로, 1884년에 에드워드 보스키 회사가 제작했습니다. 이 그림은 당시 그곳에 머물렀던 윌리엄 F. 소시 선장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지금의 번화한 금융지구와 페리빌딩, 고층 빌딩이 가득한 해안가를 떠올리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의 예르바 부에나는 작은 언덕과 흙길, 그리고 드문드문 서 있는 목조 건물 몇 채가 전부였습니다. 바다에는 여러 척의 범선이 정박해 있고, 해안가에는 작은 부두와 창고가 보입니다.
그곳은 아직 금이 발견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일종의 태풍전 고요와도 같아 보입니다. 1848년 골드러시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 항구는 조용한 교역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작은 만(코브)이 이후 수많은 이민자와 모험가들이 몰려드는 관문이 되었고, 샌프란시스코는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게 됩니다.
3. 황금의 광기가 빚어낸 ‘인공의 땅’
1848년 골드러시가 시작되자 예르바 부에나 코브의 풍경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배들이 만을 가득 채웠고, 마음 급한 광부들이 버리고 떠난 수백 척의 선박들이 해안가에 방치되었습니다. 도시는 이 배들을 치우는 대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땅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다운타운의 땅 대부분은 이후 매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의 해안선은 지금보다 훨씬 안쪽에 있었고, 현재의 몽고메리 스트리트 일대는 바다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당시 해안선이었던 몽고메리 스트리트(Montgomery St)는 매립을 통해 점점 바다와 멀어지며 내륙의 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걷는 몽고메리 거리 동쪽, 마켓 거리 북쪽에서 텔레그래프 힐에 이르는 광활한 금융지구는 그렇게 바다 위에 세워진 ‘인공의 땅’이 되었습니다. 1898년에 완공된 랜드마크 페리 빌딩(Ferry Building) 역시 과거에는 바다였던 매립지 끝단에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4. 오늘날의 두 언덕: 코이트 타워와 초현대적 타워
예르바 부에나 코브라는 바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양 끝을 지키던 두 언덕은 오늘날에도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래프 힐은 여전히 코이트 타워와 함께 도시의 역사와 향수를 간직한 파수꾼으로 남아있습니다. 린컨 힐은 과거 부촌의 영광을 이어받아 ‘원 린콘 힐’ 같은 초현대적 고층 타워로 변모하여 도시의 미래를 상징합니다.
샌프란시스코 금융 지구의 빌딩 숲을 걸을 때, 우리의 발밑에는 180년 전 파도에 밀려온 모래와 광부들이 버리고 간 낡은 목선의 파편들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예르바 부에나 코브는 샌프란시스코의 출발점이자, 이 도시가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며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장면입니다. 번화한 현재와 소박했던 과거의 항구 풍경을 함께 떠올려 보세요. 샌프란시스코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거대한 시간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경이로운 기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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