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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Won-yong (1896-1976): A Testimony to History
Read in Korean Seo-ho Kim Won-yong came to the United States from Shanghai, China, in May 1917 for his studies, but initially delayed his education to participate in patriotic movements. While studying at a university in Ohio, he participated as a founding representative in the Korean Student Association meeting held in San Francisco in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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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Gyu-sik (1881 – 1950): Active as a representative at the Paris Peace Conference
Read in Korean Born in Gyeongnam, he went to study in the United States in 1897, where he studied literature at Roanoke University and completed his master’s degree at Princeton University in 1904. After returning to Korea in 1905, he served as the secretary-general of the Gyeongseong Youth Association and concurrently held positions as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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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용(1881-1964):일생을 선교에 바치다
Read in English 1904년에 미국에 온 그는 일생을 선교 사업에 바쳤다. 1908년 아세아실업주식회사를 창립하여 한인의 실업을 장려하였다. 1909년 5월 멕시코에 이주한 동포들이 농장의 노예노동에서 풀려나는 때에 북미국민회 총회에서는 황사용과 방화 중 두 위원을 멕시코로 보내 실정을 알아보고 돕게 하였다. 5월 20일경 유카탄주의 프로그레소항에 도착하였는데 그것은 한인노동자들이 발을 들여놓은 이래 처음 가는 한인이었다. 처절한 노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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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언(1880-1951):시조와 문장의 대가
‘동해수부’라는 필명을 가지고 있던 홍언은 서울에서 출생했다. 문예에 소질이 있던 선비로 공부를 목적으로 1905년 하와이로 이민 왔다. 1906년 하와이에서 ‘자강회 월보’와 1907년 하와이 24개 단체를 합쳐 한인합성협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한인합성신보의 주필이 되었다. 또한 ‘신한국보’주필이 되어 동포들의 실력향상과 교육 장려를 위해 노력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와서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부회장으로 봉사했으며 1908년부터 4년 동안 신한민보 주필로 일했다. 신한민보에 동해수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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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영(1892-1982):독립금을 걷기 위해 발로 살았다
Read in English 1913년 20세의 나이로 유학차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로스앤젤레스, 다뉴바,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60년을 오로지 대한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3.1운동이후 다뉴바에서 국민회 지방회장을 지내며 200여 한인들을 모아 대회를 열고 바로 그 자리에서 독립금을 거두었다. 혼자 서 한인이 사는 곳이면 찾아가서 독립금을 거두어서 이승만에게 보냈다. 포도장사 하던 것도 소홀히 하고 일 년 내내 한인이 사는 곳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