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병구(1882-1949):유엔 평화회의 한국대표
Read in English 서울에서 출생하여 구한말 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신자가 되었다. 서울에서 선교사 통역관으로 활동하다 하와이 이민들이 목사 파송을 요청하자 목회를 하려고 도미하였다. 하와이에서 신민회와 ‘애바친목회’를 결성하고 1905년 이승만과 루즈벨트 대통령을 찾아가 독립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1906년 ‘시사신보’를 창간했으며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했다. 1909년 샌프란시스코 상항한인감리교회에 전도사로 취임하여 2년간 시무했다. 1919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지방 외교관으로…
-
문양목(1869-1940):동학혁명 참가 후 미국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
Read in English 동학혁명 당시 농민군으로 가담 문양목(1869.6.7 ~ 1940.12.25)은 충청남도 서산 출신으로, 일찍이 반봉건·반외세의 의식을 가진 지식인이었다. 1894년 동학혁명이 발발하자 25세의 나이에 농민군에 가담하여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나 혁명이 실패하자 체포될 위기에 처했으며,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1903년 인천에서 서당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던 그는, 점차 노골화되는 일본의 한국 침탈에 분노하며 국권 회복을 위한…
-
김종림(1884-1973):쌀의 왕으로 불린 큰손
Read in English 김종림은 당시 ‘Rice King(쌀의 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한인 중에 가장 많은 농토를 가지고 경작을 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는 번 돈으로 한인 사회 도처에 필요한 곳은 물론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기부하였고, 비행학교를 설립해 모든 재정을 뒷바라지한 통이 큰 사업가였다. 1916년 당시 윌로우스에서 4천3백 에이커에 벼농사를 지었는데 연 수입규모가 백만 달러가 넘었으며 당시 캐딜락…
-
김성권(1875-1960):도산 정신을 이어간 문필가
Read in English 1904년 29세의 나이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왔다. 천성적으로 노동이 맞지 않아 고생하자 이를 본 친구 강영소가 하와이 애와농장에 조그만 점포를 하나 내주었다. 농기구와 음식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러나 외상값을 회수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1908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와서는 미국인 가게에 점원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고향 경주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동생 둘을 불러…
-
김규식(1881-1950):파리 평화회의 대표로 활약
Read in English 경남에서 출생하여 1897년 미국에 유학을 와 로녹대학(Roanoke University)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1904년 프린스턴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1905년 귀국하여 ‘경성청년회’총무를 맡았고 경신학교 교감과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겸임했다. 1913년 중국으로 가서 해외민족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월 상해 임시정부 한국대표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평화회의에 가서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 진정서를 제출하려 했으나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임시정부 수립 후 의무총장과 학무총장으로,…
-
Kwak Rim-dae (1884–1971), Director of the Willows Aviation School
Read in Korean Kwak Rim-dae was born in a rural area of Gyeonggi Province in 1884. In 1911, he was implicated in the 105-Man Incident related to the Syuyang Dongwoo Association and served five years in prison before fleeing to the United States. There, he joined forces with Ahn Chang-ho to unite Korean immigrants and…